식물 좋아하세요? — 홍콩야자를 키우며 알게 된 것들
어느 날, 선물로 온 홍콩야자
사실 저는 식물이랑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어요. 화분이라고는 어디선가 받은 받침대 위에 먼지만 쌓여 있던 게 전부였고, 물을 줘야 한다는 생각조차 잘 안 하고 살았거든요. 그러다 지인이 집들이 선물이라며 홍콩야자 화분 하나를 불쑥 안겨줬어요. "이건 진짜 안 죽어요, 걱정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요.
처음엔 반가움보다 부담이 더 컸어요. 이름도 낯설고 어디에 둬야 하는지도 몰라서, 일단 거실 창가 근처에 아무렇게나 놓아뒀거든요. 그런데 며칠 지나 검색을 좀 해보니, 홍콩야자는 직사광선보다 밝은 간접광을 좋아하고 흙이 어느 정도 마르면 흠뻑 물을 줘야 한다더라고요. 게다가 파키라랑 자주 헷갈리는 식물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신기하게도 그 별거 아닌 정보 몇 줄이 저를 조금 다르게 만들었어요. 화분을 그냥 놓아두는 게 아니라 '들여다보는' 사람이 된 거예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잎에 물기가 남았나 살피고, 새잎이 하나 돋으면 그날 하루가 괜히 뿌듯해지고요. 그렇게 저는 얼떨결에, 정말 얼떨결에 식물 집사가 됐답니다.
사실 우리는 식물을 좋아하도록 태어났어요
혹시 이런 적 있으세요? 딱히 이유는 모르겠는데 초록색 잎을 보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요. 저도 홍콩야자를 들이고 나서야 알았는데, 이게 그냥 기분 탓이 아니더라고요.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1984년에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개념을 널리 알렸는데, 인간에게는 자연이나 다른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원래부터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예요.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배고프면 밥을 찾게 만드는 본능이 몸에 있듯이, 마음에도 초록빛과 생명을 그리워하는 본능이 따로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 본능은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산다고 사라지지 않는대요. 오히려 자연과 멀어질수록 더 간절해지는 걸지도 몰라요.
그러고 보면 화분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제오늘 생긴 유행이 아니에요. 인류는 약 1만 2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부터 이미 식물을 심고 가꾸기 시작했거든요.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밀과 보리를,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는 벼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서로 연락도 안 되던 지역에서 약속이나 한 듯 식물을 곁에 두기 시작한 거예요.
재밌는 건 그다음이에요. 그냥 먹으려고만 키운 게 아니었거든요. 기원전 16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600년쯤 전 고대 이집트 무덤 벽화에는 연못을 가운데 두고 야자수와 아카시아를 좌우 대칭으로 심어놓은 정원 그림이 남아 있어요. 순전히 감상하려고 만든, 요즘 말로 하면 '관엽식물 인테리어'의 원조인 셈이죠. 이 흐름이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 가든'과 그 유명한 바빌론의 공중정원으로까지 이어졌다니, 식물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짐작이 가시죠?
결국 여러분이 홍콩야자 화분 하나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도 유별난 취향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새겨진 자연스러운 본능일걸요? 우리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으니까요.
화분 하나가 혈압을 낮춘다는 과학
여기까지 읽으시면 "그래서 식물 좋아하는 게 뭐 어쨌다는 거야" 싶으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게 그냥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몸에 나타나는 변화라는 게 재밌는 지점이에요.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화분을 만지고 분갈이를 하게 했더니, 교감신경계의 스트레스 반응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고 해요. 같은 시간 동안 컴퓨터 작업을 한 그룹보다 이완기 혈압도 더 낮았고, 스스로 느끼는 편안함도 훨씬 컸다고 하더라고요.
혈압계 숫자만 얘기하면 좀 멀게 느껴지실까 봐 하나 더 얹어볼게요. 화분 몇 개 놓인 방에 5~10분만 있어도, 식물 없는 방에 있던 사람들보다 더 행복감을 느꼈다는 결과도 있어요. 마치 커피 한 잔이 주는 기분 전환처럼, 짧은 시간이어도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거죠.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에서는 88%가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뒤 정신건강이 좋아졌다고 답했고, 67%는 몸 컨디션까지 나아졌다고 했다니, 이 정도면 우연이라고 하기엔 숫자가 꽤 쌓인 셈이에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불과 1만 2천 년 전까지도 흙을 만지고 씨를 심고 수확하며 살아온 존재니까요. 그 오래된 습관을 도시의 아파트 베란다로 옮겨온 게 지금의 반려식물이고, 홍콩야자 화분 하나를 들여다보는 손끝에서 몸이 반응하는 것도 어쩌면 아주 오래된 기억이 잠깐 깨어나는 순간일걸요?
한 화분에 두 그루가 살고 있었어요
선물로 홍콩야자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냥 예쁜 초록 화분 하나려니 했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잎이 나는 방향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더라고요. 흙을 살살 헤쳐보니 세상에, 뿌리가 한데 얽힌 채로 두 그루가 한 화분에 나란히 심겨 있었어요.
농장에서 출하할 때 아예 두 포기를 붙여 심어 풍성해 보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오히려 이득 아닌가" 싶었는데, 홍콩야자는 과습과 뿌리썩음이 제일 흔한 문제라, 두 그루가 좁은 화분 속에서 물과 양분을 나눠 쓰다 보면 둘 다 시들시들해지기 쉽대요. 그래서 큰맘 먹고 각자의 집을 만들어주기로 했어요.
타이밍부터 신경 썼어요. 식물도 사람처럼 컨디션 좋을 때 큰 변화를 견디는 법이라, 뿌리가 활발히 자라는 봄에 분갈이를 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화분을 뒤집어 뿌리 뭉치를 꺼내보니 정말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는데, 여기서 급한 마음에 뚝뚝 끊어내면 안 돼요. 손가락으로 살살 풀어주면서, 정 안 풀리는 부분만 가위로 다듬되 전체 뿌리의 30%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정리했어요. 너무 많이 잘라내면 회복하느라 잎이 축 처지는 걸 저도 겪어봤거든요.
사실 저는 분갈이라는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겁도 났어요. 그런데 막상 장갑을 끼고 얽힌 뿌리를 하나씩 풀어주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화분을 만지고 분갈이하는 것만으로도 몸의 스트레스 반응이 가라앉는다던 그 연구 얘기가, 바로 제 손끝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셈이에요.
두 그루를 새 화분에 나눠 심고 제가 제일 크게 착각했던 게 있어요. '이제 물을 듬뿍 줘야지' 했는데, 사실은 반대더라고요. 갓 분갈이한 뿌리는 상처투성이라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뿌리썩음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처음 며칠은 물보다 습도 관리가 우선이에요. 화분 주변에 분무기로 살짝 물을 뿌려주고 밝은 간접광 자리에 두는 정도로 다독이면서, 흙은 겉이 완전히 말랐다 싶을 때만 흠뻑 줬어요. 신기하게도 일주일쯤 지나니 두 화분 모두 새잎을 밀어 올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각자의 자리를 찾아준 보람이 그때 느껴졌어요.
홍콩야자, 이렇게 키우면 돼요
일단 자리부터 잘 잡아주는 게 중요해요. 홍콩야자는 밝은 간접광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렇다고 창가에 딱 붙여 직사광선을 쬐면 오히려 잎이 타버릴 수 있으니, 커튼 한 장 정도 걸러진 빛이 드는 자리나 창에서 살짝 떨어진 곳이 딱이에요. 다행히 중간 밝기나 약한 빛에서도 그럭저럭 버텨주는 편이라, 볕이 잘 안 드는 집이라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물주기는 저도 처음에 제일 헷갈렸던 부분인데, 요령은 의외로 간단해요. 흙 속까지 손가락을 푹 찔러봐서 절반쯤 말랐다 싶을 때, 화분 밑 배수구로 물이 주르륵 흘러나올 때까지 흠뻑 주면 돼요. 매일 찔끔찔끔 주는 것보다 "말랐다 싶을 때 확실하게"가 홍콩야자한테는 훨씬 잘 맞더라고요.
여기서 진짜 조심할 건 물 부족보다 오히려 물 과다예요. 흙이 축축한 채로 오래 방치되면 뿌리가 숨을 못 쉬어 뿌리썩음으로 이어지는데, 이게 제일 흔한 실패 원인이거든요. 배수 잘 되는 화분에 심고, 물받침에 고인 물은 바로바로 버리는 습관만 들여도 절반은 성공이에요.
아 그리고 하나 더, 홍콩야자를 사러 갔다가 파키라를 잘못 데려오는 분들이 은근히 많아요. 둘이 잎 모양이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데, 엄연히 다른 종이고 관리법도 조금씩 다르니 이름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데려오시길 추천드려요.
결국, 식물을 돌보는 법은 나를 돌보는 법
생각해보면 참 신기해요. 저는 그냥 홍콩야자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주고, 흙이 바짝 말랐나 손가락으로 콕 찔러보는 것뿐인데, 그 사소한 행동 하나가 1만 2천 년 전 누군가 처음 씨앗을 땅에 심었던 순간과 이어져 있다는 거요. 인류가 정착해 밀과 보리를 키우기 시작한 게 그 즈음이었고, 그보다 한참 뒤 이집트 사람들은 먹으려는 것도 아닌데 그저 보기 좋으라고 연못 옆에 야자수와 아카시아를 정원처럼 심었대요. 먹고사는 것과 별개로 곁에 초록을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미 그때부터 있었던 거죠.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걸 '바이오필리아'라고 불렀어요. 자연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게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원래 새겨진 본능이라는 거예요. 아무리 도시에서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살아도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홍콩야자 잎을 한 번 쓸어보고 싶은 그 충동도, 그냥 취향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본능이 살짝 고개를 내미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더라고요. 실제로 화분을 만지거나 분갈이를 하면 긴장했던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혈압까지 낮아진다는 연구가 있고, 식물 키우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열에 아홉 가까이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대요. 화분 몇 개 있는 방에 5분만 있어도 기분이 나아졌다는 얘기도 있고요. 저는 이 숫자들을 보면서, 아 홍콩야자에 물 주며 느꼈던 그 이상한 편안함이 착각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그러니까 홍콩야자를 잘 키우는 법을 안다는 건, 물 주는 타이밍이나 햇빛 방향 같은 걸 외우는 게 다가 아니에요. 흙이 절반쯤 말랐을 때 물을 흠뻑 주고, 직사광선은 피하고, 과습만 조심하면 되는 은근히 순한 친구거든요. 그런데 그 단순한 루틴을 지키다 보면 어느새 나도 같이 챙기게 되더라고요. 잎 상태를 살피려고 잠깐 멈추는 그 몇 초가, 사실은 나 자신의 상태를 살피는 시간이었던 거예요. 여러분도 홍콩야자 한 그루 곁에 두고, 그 안에서 아주 오래된 위안을 슬쩍 빌려와 보셨으면 좋겠어요.